Insights & Report #7

[매일경제] 사용자 처벌만으론 산재 못막아 … 근로자의 '현장 익명 제보' 보장해야

법무법인(유한) 민 고태관 변호사

최근 수년간 대한민국 산업안전 정책의 중심추는 강도 높은 '사용자 압박'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2024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이거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인 중소 규모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되었고, 고용노동부는 사망사고 발생 시 과징금 부과와 영업정지 등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법기관의 형벌권 행사 역시 날로 엄해지고 있다. 건설업 현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단 1건만 발생해도 기업이 짊어져야 할 직간접적 손실액은 현재 환율로 약 32억원 선에 달하며, 장기화되는 수사와 재판은 경영 공백이라는 치명적인 사법 리스크로 이어진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건설 및 노동 분야 전문 변호사로서 수많은 산업재해 사건을 최일선에서 마주해 온 필자의 현장감각으로는 지금의 제도적 방향성에 깊은 의문이 든다. 통계 역시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의 2025 산업재해현황분석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오히려 산재근로자 수와 재해율은 매년 증가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2021년 12만2000여 명이던 산재근로자는 2024년 14만2000여 명으로 늘었고, 근로자 1000명 대비 재해자 수를 뜻하는 재해율도 꾸준히 상승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 산업재해는 단순히 사용자의 의무 소홀 때문만이 아니라, 현장 근로자의 불가피한 부주의나 안전수칙 미준수 등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위험 요소를 가장 잘 알고 있고 사고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주체는 다름 아닌 현장 근로자이다. 이를 외면한 채 사용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처벌 위주의 방식으로는 산재 예방에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해외 안전 선진국들은 이미 사용자 처벌 중심 정책의 한계를 깨닫고, 근로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끄는 안전문화 정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례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자율보호프로그램(VPP)'이나 유럽연합(EU)에서 폭넓게 운용되는 '니어미스(Near-Miss·아차사고) 리포팅 시스템'은 근로자가 현장의 잠재적 위험을 발견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기업은 이를 토대로 즉각적인 환경 개선에 나서는 노사 상생의 예방 프로세스를 기본으로 한다. 300번의 잠재적 징후와 29번의 경상 뒤에 1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아차사고 단계에서 위험의 싹을 자르는 것만이 중대재해를 막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건설 현장에서도 이러한 자발적 참여가 절실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우리 건설 현장의 노동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얽혀 있어 일용직이나 협력업체 근로자가 원청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또 현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용 불안정이나 체류 자격 불이익을 우려해 위험을 목격하고도 침묵을 선택하며, 언어장벽도 본사와의 소통을 가로막는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근로자가 신분 노출이나 고용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 없이 자유롭게 위험을 제보할 수 있도록 철저한 '블라인드(익명)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 실명 위주의 기존 대기업 앱이나 포상금을 노린 파파라치를 양산하는 정부 운영 시스템만으로는 자발적 참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도 쉽게 쓸 수 있는 다국어 자동번역 지원 플랫폼이 확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위험 요소를 제보한 근로자에게 신변 노출 없이 확실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근로자 스스로 현장의 안전 주체가 되는 진정한 예방 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형벌의 공포로 옥죄는 방식만으로는 결코 일터의 죽음을 멈출 수 없다. 근로자가 눈치 보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해 안전을 제안하는 현장 밀착형 정책과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기업도 근로자도 모두 안전해지는 대한민국이 올 수 있다.

[고태관 법무법인 민 대표]

CONTACT

대표변호사 고태관 법률 상담

사무실 직통 02-6250-0149

팩스 02-6250-0151

메일 tkko@lawmin.net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26, 대공빌딩 12층